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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3
    김경미
    참가자

      가까스로 발제물을 올렸다. 

      처음 상황주의를 나의 발제 제목으로 삼으려 했을 때는 하고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다.

      정작 책을 접하고 요약을 하면서는 가슴 한켠에 솟아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죠셉플레처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해서 자세한 인물파악이 안되었기 때문에 변증학자인 가이슬러의 변증으로 그를 파악하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지나칠 정도로 까는 느낌?)

       그리고  그에 대한 연민이었는데 기독교 신학자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것은 처음 상황주의를 제창했을 당시 시대적 배경안에서의 불가피한 적용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시작되었던 것이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보니 생긴 마음이다.

      작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분명 도덕폐기론을 일상의 사고로 살아가는 시대임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종교,정치 리더들이 이끄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기독인들 조차 부끄러움 없이 화인맞은 양심으로 죽어가고 있다.

       참으로 희안한 일은 입으로는 잘 들 말한다. 사랑한다고 . 그리고 사랑하라고.

      우리가 감히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있는 존재들인가?

      플레처가’ 아가페’만 입에 올리지 않았어도 이렇게 어이없진 않았으리라.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심 자체만으로도 가늠이 어려운 엄청난 사랑이요, 십자가의 그사랑의 역사를 표현하는’ 아가페’를 어떻게 인간이 실현 할 수 있단 말인가? 작은 자존심 상함도 참아내지 못하는 인간들이.

      기독교 윤리는 기독인들만 지켜서 잘 살라는 말씀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세상에 드러내어 변화시키라는 말씀으로 주신 계율이 아닐까?

      기독교는 믿음을 실천하는 삶의 현장이기에 더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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